비위가 약하여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음식에 대하여 그리 신경 쓰지 않는 체질이다. 음식과 요리는 그 나라의 기후에 크게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잘 재배되는 채소와 동물을 이용한 요리이기 때문에 신토불이라고 한다.
음식 문화는 환경에 맞게 발전한 것이다.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채소류와 가축이 재배되고 환경에 맞도록 발효식품이 발달하였다. 그러므로 매일 먹는 음식은 그 나라의 환경, 기후, 그에 따른 성격과 문화까지 고스란히 녹아들어 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내 음식이 어떤 특성이 있나 알 수 없었다. 외국에 가서 살더라도 가족이 한국식으로 먹었으니 그 나라 음식은 그저 나와 다른 나라 음식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외국 여행 가서 음식은 현지화하자는 것이 내 지론으로, 라면과 고추장을 비상식량용으로만 조금 가져갔었지만 여행 한 달 정도가 지나도록 특별한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한국 음식 특징은 짜고 매운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 다니면서 아~ 한국 음식은 이래서 다른 면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샐러드냐, 융합문화냐를 논할 때, 미국은 각종 샐러드가 조화를 이룬 특성적인 문화라면, 우리 음식은 여러 가지가 혼합된 융합문화이다. 외국에서 단순히 익히고, 굽고, 데우는 음식과 한국의 펄펄 끓는 것을 내놓는 음식과는 다르다. 뼈를 며칠간 푹 삶아 고아 우려낸 육수, 많은 약초를 넣어 함께 삶아 짜낸 건강요리, 며칠씩 펄펄 끓여가며 먹는 찌개 등은 외국에서 찾을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뚜렷한 사계절에서 다음 계절을 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므로 제시간에 빨리빨리 해야 한다.
한식은 뜨겁다. 이것은 서양과 가장 대별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빵을 굽거나, 데워도 입에 들어갈 때는 그리 뜨겁지 않다. 그러나 한식은 밥은 물론 국과 탕은 매우 뜨거워 심지어 입천장이 델 정도이다. 펄펄 끓는 우러난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불어 식혀가면서 먹으면서도 시원하다는 느낌을 알아야 한다.
뚜렷한 사계절에서 다음 계절을 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므로 제시간에 빨리빨리 해야 한다. 우리들은 대체로 화끈한 것을 좋아한다. 남 눈치도 많이 보지만 타협이 적고, 너 죽고 나 죽고, 갈 데까지 간다는 극한 대립이 상당히 심한 것 같다.
한식은 우러나온 국물이다. 양식을 먹을 때는 항상 무엇을 마실 것인가 물어본다. 물, 콜라, 과일 음료수까지 다양하다.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한식에서는 무조건 물부터 나온다. 그리고 장과 국이 있어야 제대로 된 한식이다. 끈기 있는 밥에 국은 필연으로 국물을 떠먹어야 한다.
생선 머리, 생선 가시, 각종 사골까지 오랫동안 끓여 녹아 나온 국물인 탕거리들, 이렇게 알뜰하게 이용하고 깊은 맛을 내는 요리가 다른 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일상적인 것이라 평소에 생각지 않았던 된장찌개, 김치찌개, 백숙과 죽, 온종일 은근한 불로 끓여 고아 낸 구수하고 펄펄 끓는 곰탕 국물, 매콤한 매운탕이 그립다면 한국인이다.
진국의 깊은 맛을 아는 기다림의 은근과 끈기가 있고, 급한 성격이 밥과 탕으로 나타났다. 아니 환경적으로 탄생한 밥과 탕이 성격과 맞아떨어진 것 같다.
한식은 반찬이다. 양식에서 샐러드, 메인과 후식이 나오고, 여러 선택이 있지만, 몇 종류나 되겠나. 우리도 그 정도의 육, 채소 요리가 있다. 그들에게 여러 소스가 있지만, 맛을 돋우는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간을 맞추는 간장, 고추장과 식초가 들어간다
한식의 반찬은 예전과 같이 밥을 많이 먹지 않고 반찬도 적어졌지만, 상다리가 부서진다는 표현이 맞는 것이다. 정상적인 백반이라면 반찬은 십여 가지가 된다. 내 생각에는 한 끼 음식에는 주식인 밥의 양과 부식인 반찬의 양이 반씩 될 것 같다. 밥이라는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이 뭉쳐진 느낌이다.
한식은 어우러짐이다. 탕, 국, 찌개는 육식과 채소가 만나는 장소이다. 밥과 다양한 반찬이 있고, 반찬은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진 것이다. 각종 나물, 장아찌, 생선과 고기류, 튀김, 장과 국이 만난다. 된장은 무엇이 주재료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김치찌개라고 해서 김치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찌개는 주된 이름으로 불리지만 여러 재료가 융합되어 이루어진 어우러짐이 만들어낸 진국인 것이다.
한식은 어우러짐이다. 탕, 국, 찌개는 육식과 채소가 만나는 장소이다.
70대의 4개월간 남미 여행 소감 – 한식과 한국인
어우러짐을 잘 나타내는 또 하나는 비빔밥이다. 꽁보리 비빔밥, 육회 비빔밥, 멍게 같은 비빔밥도 있다. 그릇에 따라서 돌솥 비빔밥, 대나무 비빔밥으로도 분류한다. 산채 나물 비빔밥, 곤드레 나물 비빔밥 등 이름만 붙이면 다 비빔밥이 된다. 날계란과 기름을 넣고 비벼 먹으면 금상첨화다.
하나로 융합된 것이므로 개별적인 것은 잘 용납되지 않아 남을 의식해야 하므로 때로는 피곤하다. 남미에서는 남을 의식하지 않는 듯 옷에 거의 신경 쓰지 않게 정도로 마구잡이로 입고 다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러면 엄청 눈길을 끌 것이다. 남을 의식해야 하므로 때로는 피곤하다. 그러나 어울려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하고, 그러므로서 강한 외세와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뭉치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나라, 우리 가족, 우리 마누라 하는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우리 마누라라고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하여 깜짝 놀랐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와이프를 ‘내 집식구에요’라고 소개하지만, 이것도 가족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식구는 같은 먹는 의미이므로 우리는 같이 가야 하는 운명체인 것이다.
한국은 채소 왕국이다. 동남아 음식에 대하여 잘 모르지만 한국같이 다양한 채소류를 음식 재료로 사용할까 생각되었다. 봄철에 나오는 쑥, 냉이 같은 야생 잡초들, 두릅, 오가피, 심지어 옻 순, 고사리 같은 각종 나무의 새순 등이 거의 전부가 먹거리다. 이것을 말려서 겨울에도 먹을 수 있다. 아마 억세지 않다면 여름에도 계속 먹을 수 있도록 발전했을 것이다.
처음 아귀찜을 먹었을 때, 아귀보다 훨씬 많은 콩나물에 놀랐었다. 나중에는 고기에서 우러나 콩나물에 밴 그 맛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억세게 혹독한 기후 환경에서 살아남은 민족이다. 채소 같이 약하면서도 잡초같이 끈질기게 이어왔다.
남미에서 버섯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우리나라는 겨울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섯의 종류도 엄청 많다. 능이, 표고, 송이의 특별한 버섯같이 좋은 버섯을 제외하고,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버섯이나 채소도 먹을 수 있게 발달해 있다. 외국에서 고사리 같은 것은 독성 식물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끓여 데쳐서 독성을 없애고 먹을 수 있다. 더구나 말려서 한 해 동안 먹을 수 있다.
이들이 얼마나 맛있는가. 심지어 독성이 매우 큰 뱀과 벌도 알코올에 담가 약으로 먹는다. 독성이 있는 재료를 삶고, 데치고, 건조시키고, 쌀뜨물에 담그고, 알코올에 담가 법제하는 과정을 거쳐서 먹을 수 있도록 발달했. 우리가 못 먹는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발효식품이 많이 발달하였다. 몇 가지가 아니고,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식재료는 시간이 지나면 상하게 되어 있는데, 소금물, 고추장, 식초 등에 넣어 한 해 동안 먹을 수 있다. 다양한 김치 종류는 말할 것도 없고, 깻잎, 마늘, 오이 등 모든 채소류를 장아찌로 만든다.
더하여 게장, 새우젓, 창난젓 등 얼마나 다양한 종류가 있나. 완숙된 시큼한 김치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고, 칼칼하다거나 시원하다는 느낌을 알아야 한식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어떠한 위기나 위험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는 국민정신을 만들어 준 것 같다.
강대국과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도망칠 곳도 없는 조그마한 땅이면서도 산이 훨씬 더 많은 좁은 나라, 변화무쌍한 사계절의 자연환경이면서도 토양의 비옥도가 매우 낮고, 자원도 매우 적은 나라이다.
그러면서도 수천 년간 단일 민족으로 살아남았다. 이 같은 환경은 성실, 부지런함, 남에 대한 의식과 상부상조의 정신, 억척같은 삶, 끈기 있는 민족성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음식이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은 민족은 세계 어느 곳에 갔어도 살아남을 것이다.